김씨(金氏) 본관(本貫) 당악(棠岳)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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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관향의 연혁]
시조 김 인(金 忍)은 신라 제56대 경순왕의 제3자 명종(鳴鍾)의 19세손이다. 그는 오위도총부(五衛都摠府) 부총관(副摠管)을 지내고 태종 때 원종공신(原從功臣)이 되었다. 그리고 전라도의 수영(水營)이 무안현대굴포(務安縣大掘浦 : 현 함평군 학고면 대곡리)에 있을 때 좌막(佐幕)으로 있으면서 그곳에서 20리쯤 올라온 나주시 마산면 귀업리(羅州郡 馬山面 龜業里 : 현 나주시 왕곡면 송죽리 귀업부락)에 터를 잡아 세거지를 마련했다 한다. 본관은 그의 증조 김남보(金南寶)가 고려 말에 병부상서를 지내고 조선 개국 후 해남(海南)으로 은거하였기 때문에 해남 또는 당시의 지명인 당악(棠岳)을 따서 당악김씨(棠岳金氏)라고도 한다. 시조의 묘소는 전남 영암군 금정면 남송리에 있으며, 음력 3월 3일에 향사한다.
당악김씨는 수군계(水軍系) 집안으로 큰 인물은 내지 못했다. 외손인 박순(朴淳)이 정승 자리에 14년간 있으면서 전남 선비들의 정계 진출에 크게 공헌했는데도 당악김씨만은 별다른 영향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. 시조 인의 손자 종(琮)이 정언(正言)을 지냈는데 이 분이 전남의 조선조 인맥에서 중조(中祖)라고 할 수 있는 사암(思菴) 박순의 외조부이다. 1592년(선조25) 임진왜란에 이어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당악김씨의 세거지인 귀업(龜業)은 쑥밭이 되고 많은 인명 피해를 당했으며 원경(元慶)의 아들 준(浚)은 일본까지 끌려갔다가 23년만에 돌아와서 다섯 아들을 두어 이 집안의 중심을 이루었다. 원록(元祿)의 손자 만영(萬英)은 학문이 높아 남평(南平)의 동몽교관(童蒙敎官)을 지내고 죽은 후에 풍산사(楓山祠)에 제향되었다.
[가문의 유래]
자료 추가 중.
[항렬표]
자료 추가 중.
[주요집성촌]
-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
- 전라남도 나주시 문평면
- 전라남도 나주시 왕곡면
-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
-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
- 충청남도 보령시 대천읍